이 글에서는 독일의 선거제도 탄생과정과 이후 어떤 개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나를 살펴본다.

독일 연방하원 선거제도는 단순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의 혼합선거제도로 알려져 있고, 정치적 타협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한 명품(?)이라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독일 연방하원 선거제도는 명백히 “비례대표제”이며, 서독 정치체제를 디자인하는 과정에 단수다수대표제 지지세력과 비례대표 지지세력간의 첨예한 경쟁 결과 비례대표제 세력이 승리로 탄생한 선거제도라 할 수 있다.

전사

독일제국 의회의 선거제도는 북독일 연방의 선거제도를 이어받고 있다. 397개 선거구로 나누어 결선투표제를 통해 의원을 선출했다. 결선투표에서 정당간에 연합이 가능해 친정부 보수정당들은 이득을 본 반면, 사민당은 고립되어 결선투표에서 지는 경우가 많았다. 1 그외에도 인구변화에도 선거구의 조정을 하지 않은 결과 도시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하던 사민당은 더 손해를 보고, 보수정당들은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에 선거제도 개혁주장이 있었으나 실행되지는 못했다.

1차대전의 패전으로 제국이 붕괴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집권한 사민당은 전국단위의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선거권도 대폭 확장했다. 선거연령을 만 25세에서 20세로 낮추고, 여성과 군인에게도 선거권을 부여 했다. 2 전국을 35개의 선거구로 나누고, 각 정당은 선거구별로 정당명부를 작성해서 득표수 6만당 1석을 배정하고, 몇개의 선거구를 묶어 각 선거구의 잔여표를 모아 6만명당 1석을 추가 배정하고, 다시 생기는 잔여표는 전국단위로 모아 6만표당 1석을 다시 배정했으며, 전국단위의 잔여표가 3만이 넘으면 1석을 추가배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weimarer-wahlrecht2

바이마르공화국 선거제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완전 비례대표제로 인해 많은 수의 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고, 극단적 분파의 정당이 성장함에 따라 안정적인 연정구성이 어려워지고, 정권이 불안정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선거구가 커서 유권자와 의원간에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부작용도 생겼다. 이런 문제로 인해 결선투표제의 재도입이나 영국식 소선거구제의 도입, 1당 프리미엄제 등 많은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지만 실제 선거법 개정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헌법에 비례대표제를 명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30년 수상 Heinrich Brüning가 선거구 수를 162개로 늘려 선거구크기를 줄이고, 1석당 필요한 표를 7만표로 올리고, 잔여표도 주단위에서 1회만 모으는 방식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만다. 1932년에는 파펜 총리가 선거권 연령을 25세로 올리고, 군소정당의 원내진입을 어렵게하는 방식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려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당시 중도당 정도가 선거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사민당은 비례제가 민주주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 개정에 반대 입장을 취했다. 다른 정당들은 선거연령이나 선거의 개인화 (정당이 아닌 후보에 투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선거법 개정없이 민주주의체제가 붕괴되는 것으로 끝났다.

전후 선거법 논의

1948년 독일연방공화국 헌법제정을 앞두고 제헌헌법을 만들 목적으로 소집된 의회평의회(Parlamentarischer Rat)에서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었다. 기민련과 기사련, 독일당(DP)은 소선거구제를 지지했고, 사민당과 자민당, 공산당 그리고 기타 정당은 비례대표제를 선호했다.

소선거구제를 지향하는 정당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안정적 다수파를 배출할 수 있는 소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비례대표제는 군소정당을 난립하게하고, 극단적 이념을 가진 정당의 입지를 강화해 특정 세력의 다수파 형성이 어려워지면서 연정과 정권이 불안정해지고, 이로 인해 민주주의가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3. 이런 대외적 근거외에 소선거구제를 도입할 경우 선거에서 쉽게 다수파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이 깔려 있기 때문에 소선거구제를 주장한 측면도 있다.

비례대표제를 지지한 정당들은 소선거구제를 실시할 경우 사표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는 점과 소수정당을 차별한다는 점을 들어 소선거구제를 반대했다. 역사적으로 사민당은 바아마르 공화국이전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장해왔고 4, 비례대표제가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보던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서 비례제를 지지했다. 그외의 소수정당들은 소선거구제를 할 경우 당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어 비례대표제를 지지했다.

두 세력간에 합의가 이루어 지지않아 서독 기본법에는 바이마르 헌법과 달리 선거제를 규정하지 않고, 법으로 정하도록 했다.

타협안 그러나 본질은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두고 추가 논의를 했으나 평행선을 달리며 협의에 이르지 못하자, 사민당을 중심으로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를 결합한 방식의 타협안이 만들어 졌다. 비례대표제로 의석을 배분하지만, 다수의 의석은 소선거구제로 선출하는 방안이다. 평의회의 다수가 이 타협안에 찬성했지만 5., 기민련과 기사련은 끝까지 반대했다. 기민/기사련은 원칙적으로 전체의석 배정이 비례대표제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바이마르 헌법과 다를 바 없다고 봤기 때문에 타협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양당이 대립하는 가운데,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양당제화되어 존립의 위협을 받는 소수정당들이 타협안쪽에 서면서 균형추는 타협안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기민련/기사련의 반대는 계속됐고, 타협안은 1대 연방하원 선거에만 적용되는 1회용 선거법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새 선거법으로 채택되었다 6. 사민당의 입장에서는 비례대표제를 관철 시킨 것이고 기민련/기사련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표대결에서도 열세이고 선거후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동의를 한 것이다 7.

봉쇄조항의 강화

1949년 선거법은 현 선거법의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1인 2표가 아니라 1인 1표로 지역구 후보에 대한 투표결과를 가지고 정당에 대한 의석을 배정했으며, 비례대표의 비중이 60 % 정도 차지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분극화된 다당제의 탄생을 막기위해 5 %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봉쇄조항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조항도 연방단위에서 의석을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별로 각각 5 % 봉쇄조항을 적용하고, 지역구에서 1인이라도 당선되면 비례의석 배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군소정당을 배제하는 효과는 그렇게 크지 못했다.

1949년 선거결과 아데나워는 1석 차로 기민/기사련과 자민당, 독일당 사이의 다수파 연정을 구성한다. 기민/기사련과 사민당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던 자민당이 아데나워 쪽에 서면서 우파 연정이 구성되었지만, 선거제도에 있어서는 자기이해가 명확한 자민당의 반대로 1953년 선거에서 소선거제의 도입은 좌절되고 8, 기존 선거제도가 유지 되었다. 다만 (자민당의 이해를 건들지 않는 선에서) 1953년 5 % 적용을 개별 주단위가 아니라 연방단위에서 하고, 1956년 의석배정을 위한 지역구 당선자수를 1석에서 3명으로 상향조정하는 등 봉쇄조항을 강화했다. 그 결과 60년대 부터는 양대정당과 자민당을 제외한 군소 정당들은 원내진출에 실패하게 되어 1949년 선거에서 나타났던 분극적 다당제는 사라졌다. 그외에 1953년 선거법은 비례대표의원의 비율을 40 %에서 50 %로 상향조정했다.

의석 배분 방식

의석 배분 방식으로 49년 선거법에서는 동트식을 채택하였다. 1985년 개정선거법에서는 헤어/니마이어 방식으로 변경했다. 동트방식이 소수정당을 차별하는 방식이어서 이를 수정하기 위해 비례성을 강조하는 최대잔여 방식의 일종인 헤어/니마이어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최대잔여방식의 문제점인 각종 페러독스의 발생 가능성으로 2009년 선거법에서는 최대 평균방식으로 회기하면서 소수당을 차별하는 동트식의 단점을 보완한 상트 라귀 방식을 채택한다.

초과의석과 보정의석

독일 선거법은 49년 선거법부터 일관되게 초과의석을 인정해왔다. 특정 정당의 특정지역 지역구 당선자의 수가 정당득표에 따라 해당 정당에 배분되는 의석보다 많은 경우 전체 의원 정수를 늘려서 지역구 당선자의 의석을 보장하는 것이 초과의석 제도이다. 2013년 선거법에는 초과의석의 발생으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정당에게 추가 의석을 배정하는 보정의석제도가 신설되었다.

우선 초과의석제도는 (600여석중) 299석을 소선거구제로 선출하는 의원은 정당투표와 상관없이 보장한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초과의석이 발생했을 때, 같은 정당의 다른 주의 당선자 수를 줄여서 의원 정수가 늘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음에도 의원 정수를 조정했던 것은 개별 주의 이해를 보장하기 위한 고려도 깔려 있었다.

2008년과 2011년의 헌법재판소의 특정정당의 득표수가 늘어날 경우 전체의석수가 줄어드는 부정적 투표비중(nagatives Stimmgewicht)에 대한 위헌 결정으로 보정의석제가 도입되었다. 보정의석은 부정적 투표비중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방법이지만 결과적으로 비례대표제의 성격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

선거연령

1949년부터 69년까지 투표권 만 21세, 피선거권은 만 25세까지 부여되었다. 1972년 투표권은 만 18세로 낮추고, 피선거권도 만 21세로 하향 조정했다. 1976년부터는 투표권과 피선거권 모두 만 18세로 통일했으며, 현재에도 이 규정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9

wahlalter

요약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 선거법은 전후 서독의 정치체제를 디자인하던 정치세력들의 비례대표제에 대한 신념과 바이마르공화국에 대한 평가, 개별 정치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소선거구제 세력과 비례대표제 세력의 경쟁의 결과 사민당과 자민당등 비례대표세력의 승리로 만들어진 형식적으로는 소선거구제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비례대표제인 선거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아데나워가 집권한 이후에도 비례대표제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민당으로 인해 소선거구제를 도입하지 못하고, 군소정당의 난립을 막는 봉쇄조항을 강화하는데 그쳤다. 보정의석이 도입되기 전까지 선거연령과 의석배정방식을 바꾸기는 했지만 큰 변화없이 유지되어 왔다. 2013년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비례대표제의 예외조항인 초과의석제 마저도 보정의석의 도입으로 예외조항의 성격이 사라지고, 비례대표제가 강화되었다.

참고문헌

Notes:

  1. 예를 들어 1903년 선거에서 보수당은 10 % 득표로 13.6 %의석을, 제국당은 3.5 % 득표로 5.3 % 의석을, 민족자유당은 13.8 % 득표로 12.8 % 의석을 차지한 데 비해, 사민당은 31.7 % 득표를 하고도, 20.4 %의 의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출처: Reichstagswahlen (1890-1912)
  2. 선거권 확대전인 1912년 인구의 약 22 %가 선거권을 가졌던데 비해, 새 선거법하에서는 63.3 %가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3. 비례대표제가 분극화와 다당제를 가져와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경험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50-60년대 프랑스의 정치학자 뒤베르제도 선거제도가 정당체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주장을 펼쳤지만 이후 경험적으로 반박된 바 있다.
  4. 사민당은 1891년 에어푸르트 강령부터 비례대표제를 주장해왔다. 에어푸르트 강령 원문
  5. 의회평의회내의 의석분포는 다음과 같았다. 소선거구제 진영의 기민/기사련과 독일당은 27 (+1)석과 2석이었고, 비례대표제 진영의 사민당은 27 (+3)석, 자민당은 5(+1)석, 중앙당과 독일당, 공산당은 각 2석이었다. 괄호안 플러스한 의석은 서베를린 의석으로 의결권이 없는 의석이다.
  6. 타협안에 대한 최종 표결결과는 찬성 36, 반대 29였다.
  7. 선거법은 선거법 위원회에서 초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주지사협의회에서 결정을 했다.
  8. 1952년 7월 16일 기민련의 일부 의원들이 새 선거법안을 제출한다. 이 법안은 400개 1인 선거구에서 의원을 선출하며, 1위 등표후보가 1/3을 득표하지 못 했을 경우, 상위후보 2인으로 결선투표를 진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민당에 타격을 줄 수있는 법안이라 연정이 수정안을 제출하는데, 수정안은 집권연정에 유리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지역구와 비례로 각각 242명을 선출하고, 1인2표(주투표와 부투표로 구성)를 행사하도록 했다. 지역구는 주투표와 부투표의 합이 가장 많은 후보가 당선되고, 비례대표는 주투표의 비율에 따라 분해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었다. 이에 사민당을 비롯한 야당은 기존 선거법을 유지하는 대안을 제출했다.
    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거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중간에서 결정권을 자민당의 이해가 많이 반영된, 비례 50 %로 상향, (정부안인 지역구와 비례분리 배정안과 달리) 전체의석을 정당투표에 따라 배정하고, 그 안에 지역구의석을 포함하도록하며, 봉쇠조항 적용을 주단위가 아닌 연방단위로 하는 절충안이 마련되었다. 이 타협안은 기사련과 바이에른당, 중앙당, 공산당의 반대속에 기민련, 자민당, 사민당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9. 주의회 선거에서는 일부 주가 기초선거의 경우 다수의 주가 만 16세부터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주의회 선거에서는 브레멘(2011년)과 브란덴부르크(2012년), 함부르크(2013년)등 16개주 중에서 3개주가 16세부터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기초선거에서는 16개 주중 10개 주에서 만 16세부터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니더작센(1996)과 작센안할트(1998), 슐레스비히홀스타인(1998), 메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1999),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1999) 등은 이미 90년대에 16세 선거권을 도입했고, 브레멘(2007)과 브란덴부르크(2011), 함부르크(2013), 바덴뷔르템베르크(2013), 튀링엔(2014)은 비교적 최근에 16세 선거권을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