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는 ‘전국정당(national party)’없이 지역정당(regional party)만 존재하는 유일한 산업화된 민주국가이다. 2010년 총선에서 의회에 진출한 정당이 12개나 될 정도로 많고, 정당의 이름 변경이 잦아, 언 듯 보기에 벨기에 정당체제는 매우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서구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는 노동대 자본, 국가대 교회의 균열에 언어적 균열이 추가된 데 지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서구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들어  탈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녹색당이나 반이민자 이슈를 강조하는 극우 정당도 생겨났다. 언어에 따른 지역적 균열을 제외하면 기민당과 사회당, 자유당등의 전통적인 정당이 존재하고, 80-90년대 녹색당과 극우정당이 생겨난 것은 서유럽의 일반적인 정당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언어적으로 균열되어 있는 벨기에의 특성으로 인해 같은 정당 계열(party family)에 속하더라도 언어권별로 독립적인 지역 정당의 형태로 활동는 것은 벨기에 정당체제만의 특징이다. 여기에 언어권별 이익을 대변하는 지역정당들이 존재하는 것도 또 다른 특징중에 하나다.

벨기에 정당과 정당체제를 이해하기 위해 각정당들의 역사와 이념적 변화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 벨기에 정당들의 정책적 경쟁구조나 각 정당의 당구조, 당재정같은 정당체제 전체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벨기에의 정당은 전통적 정당, 새롭게 등장한 정당, 단절적 정당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전통적 정당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면서 살아남아 아직도 벨기에 정당체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는 기민당, 사회당, 자유당을 지칭한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정당에는 80-90년대 서유럽의 다른 국가에서 처럼 환경운동이나 반이주민주의를 바탕으로 등장한 녹색당과 극우정당이 속한다. 마지막으로 단절적 정당에는 60-70년대 언어적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했다가 벨기에 정치가 지역화되면서 세력이 약화되었다가 분리주의을 내세우면서 새롭게 성장한 지역주의 정당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는 정당계열별로 나눠서 정당의 역사를 개괄 해보고자 한다.

[표1] 벨기에 정당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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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민당

기민당 계열 정당의 기원은 카톨릭당으로 1884년 국가와 교회가 학교를 둘러싸고 충돌하는 와중에 생겨났으며,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기독교 계통의 노동운동이 점차 성장함에 따라, 카톨릭당 내에서 ‘당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보통 선거권이 도입된 이후 1921년에는 ‘카톨릭 연합’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졌다. 이 당은 ‘standen’이라 불리는 4개의 집단, 즉 ‘구 카톨릭당’과 ‘기독 노동자 연합’, ‘농민 연합’, ‘자작농 연합’이 결합해서 만든 정당이었다. 1936년이 되면서 다시 ‘카톨릭 연합’으로 당명을 개정한다. 당시에 카톨릭 연합은 네덜란드어 권의 CVP와 불어권의 PSC로 나눠져 있었다. 전후에 전국 단일정당인 CVP-PSC를 구성했다. 공식 조직에는 전국적 단일성이 강조됐지만, 기독계열 노동운동과 농민, 자작농은 여전히 독자적인 자기조직을 유지하면서 당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1945년이후 CVP-PSC는 개인과 현대화, 기민주의의 가치를 수용하면서 정치적 위치를 사회당과 자유당의 중간으로 자리 매김했다. CVP-PSC는 전후 전국적 단일성을 잘 유지했으나, 내부적으로 서서히 언어별 조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벤(Leuven) 카톨릭 대학의 언어 문제를 계기로 언어권별로 갈라서게 됐다. Leuven은 플랑드르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Leuven 카톨릭대학은 불어만 사용하다가, 양언어 모두를 사용하는 대학이 되었다. 그러나 사용언어에 대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대학은 각 언어별로 독립적인 대학으로 분리되었다.

1968년 지역별로 CVP와 PSC로 분리한 이후에도 어느 정도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차이점도 많이 존재한다. 특히 양당은 그 세력면에서 큰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전통적으로 플랑드르지역은 기민당이 우세하고, 왈론지역은 사회당이 우세했던 이유로 득표율 측면에서 CVP은 PSC의 두배 정도된다.

기민당계열의 CVP-PSC은 1950년대 50% 이상의 지지를 얻기도 했으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  1961년 41%내려가고, 지역별로 분리되고 지역정당이 등장하면서 1991년 30%이하, 1999년에 20 %이하로 득표율이 내려갔다.  1999년 선거에서 CVP는 역사상 처음으로 벨기에 뿐만아니라 플랑드르에서도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상실했으며, 야당이 되었다. 이 위기를 겪으면서 PSC는 당명을 CDh(민주 인본주의자 중앙당)로 변경하면서 ‘기독’이라는 단어를 당명에서 제거했다. CVP도 충격 속에서 신뢰 회복과 다른 정당의 연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당명을 ‘CD&V(기민주의자와 플랑드르인 당)’으로 변경한다. 플랑드르 기민당 당명에 플랑드르인(Vlaams)이라는 단어의 추가는 단지 당명변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정책적 방향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플랑드르 지역주의 정당의 압력으로 2001년에 이르러서는 벨기에의 미래에 대한 입장으로 ‘국가연합’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책전환을 바탕으로 CD&V는 2004년 플랑드르 선거와 2007년 연방선거에서 플랑드르 독립을 요구하는 지역주의 정당 N-VA와 단일명부로 선거에 임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와 단일 명부를 통해 CD&V은 다시 집권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N-VA가 CD&V의 플랑드르 지역 정책이 너무 온건하다며 선거연합을 파기하고 독자적으로 선거에 출마하면서 2010선거에 위기를 맞았다.

2. 사회당

사회당은 기민당과 반대로 왈론지역에서 세력이 강했다. 남쪽의 산업지대와 북쪽 몇몇 도시에서 벨기에 노동자당(BWP-POB)이 생길때부터 이런 비대칭성이 존재했었다. 보통선거권이 도입되고 처음 실시된 선거에서 BWP-POB은 28석을 얻었는데, 이는 모두 왈룬지역에서 획득한 것이 그러한 비대칭성을 잘 보여준다. 플랑드르 지역에서도 노동운동이 발전했었지만, 이 운동은 기독교 노동자 조직이 주도했었기 때문에 사회당의 세력확대와 상관이 없었다. 사회당이 1차 대전 기간에 거국일치 내각이나 전간기에 몇 몇 정부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주류는 기독당과 자유당이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당명을 BSP-PSB로 바꾸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연정구성에 거의 참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서는 기민당의 연정 파트너가 되면서 장기간 집권했다.

벨기에 노동당도 과거 영국 노동당처럼 개인이 당원으로 직접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단위로 가입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1944년 직접가입으로 변경되었지만, 전후 변화속에서도 노조와의 밀접한 관계는 유지해 오고 있다.

기민당이나 자유당에 비해 사회당은 언어간 균열 압력을 잘 견딘 편이었다. 기민당과 자유당이 차례로 지역별로 당을 분리한 이후에도 BSP-PSB은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언어권별로 당대표를 1명씩 뽑는 등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1978년 PS와 SP로 분리했다.

PS와 SP도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세력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두 정당이 분리한 후 처음으로 임했던 선거에서 PS는 왈론지역에서 37% 정도 득표했던 것에 반해, SP의 플랑드르에서의 21%에 지나지 않았다. 이외에도 두 정당 사이에 이념적인 차이가 약간 있었다. 왈론지역 사회당은 전통적으로 노동운동과 노조에 기반해 있어서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인 측면이 있으나, 플랑드르 사회당은 노조로부터 자유로왔기 때문에 좀 더 실용적이었다. 이런 성향은 90년대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 이론이 등장했을 때, 반응에서도 잘 나타났다. 실용적인 플랑드르 사회당이 “제3의 길”에 열광했던 데 반해, 왈론 사회당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었다. 득표율을 보면 PS는 왈룬에서 대부분 1당을 유지했고, 1999와 2007을 제외하고 30%이하로 내려간적이 없었다. 2010년 선거에서는 지역내 1당의 위치를 회복했다. 반면 SP는 유럽내에서 가장 작은 사민당에 속할 정도로 세력이 약했다. 1999년 선거패배를 겪으면서 당명을 SP.a(Socialistiche Partij anders)로 변경해서 플랑드르지역의 녹색당과 기독노동운동과 플랑드르 지역당의 진보파를 포괄하려 했으나, 현재는 지역당 진보파의 일부와 함께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고 있다.

사회당 계열은 아니지만 공산당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벨기에 정당체제에서 공산당은 다른 서구 국가들에 비해 역할이 크지 않다. 벨기에 공산당은 1921년 창당했며 주로 왈룬지역에서 활동했다. 가끔씩 지역에서 10%득표를 하기도 했지만, 전국적으로 6%를 넘지는 못했다. 예외적으로 2차 대전 종전후 첫 선거에서 나찌 점령기에 저항운동을 주도한 점을 인정받아서 13%까지 득표를 했다. 하지만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5%이하로 떨어졌고, 그 후 점점 벨기에 정치에서 의미를 상실해 갔다.

3. 자유당

자유당은 160년의 역사를 가진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19세기에 카톨릭당과 경쟁하면서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자유당은 하향세에 접어 들었다. 자유당은 주로 도시 지역에서 강세를 보였고, 지역적으로는 왈론과 브뤼셀에서 강세를 보였다. 노동당이 등장하면서 왈룬지역의 주도권을 뺏겼지만, 자유주의 운동의 세력이 강했던 브뤼셀에서는 세력을 유지했다. 대중운동에 기반을 둔 기민당과 사회당에 압도당하면서, 결선투표를 시행하던 당시 선거제하에서 위기를 맞았으나, 1899년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45년까지는 3당으로 주로 카톨릭당의 연정 파트너의 역할을 했다.

종전후 자유당은 당의 정책적 위치를 두고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유당은 교회가 정치나 학교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확고한 반대입장을 견지하게 된다. ‘마지막 학교문제의 갈등'(1954-8)때부터 이 문제는 자유당의 핵심 이념이 되었고, 반 종교적인 입장을 취했다. 1961년 자유당은 당명을 PVV-PLP로 개정하면서 다시한번 이념적 재정립을 시도한다. 기존의 반종교적 입장을 떨쳐내고, 경제적 자유주의의 입장을 핵심적 이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변화를 통해 자유당은 자유시장 경제를 지지하는 카톨릭 신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이런 시도는 성공을 거두어, 다른 전통적 정당, 특히 기독당에 타격을 가하면서 1990년대 말에서는 벨기에 정치를 주도한느 위치까지 올르게 된다.

PVV-PRL도 브뤼셀에서 자유주의와 불어사용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FDF라는 정당이 생겨나면서 지역적 분할 압력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블루 라이온 1“이라 칭하는 PVV-PRL의 일부 당원들이 탈당하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결국 1971년 플랑드르 지역에서 독자적 정당인 PVV가 생겨나고, 불어권에서 오랫동안의 분열을 겪은 후 PRL로 통합되었다.

이념면에서 PVV는 80년대 초부터 신자유주의로 급격히 기운다. 하지만 1987년 다른 성향의 노조이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노조라는 대중조직에 기반을 둔 기민당과 사회당이 연정을 구성하면서 자유당(PVV)을 배제하자, PVV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당명을 VLD(플랑드르 자유주의자와 민주주의자)로 변경하고, 당대표와 당집행부 선출 방식에 혁명적 개혁을 단행한다. 당은 이 기간 동안 플랑드르 지역주의적 색채를 강화하면서 플랑드르 지역구의 정당인 Volksunie의 전 당수를 포함한 일부 당원들이 VLD에 가입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VLD는 기민당을 밀어내고 플랭드르와 벨기에 전체에서 제1당으로 부상하게 된다. 1999년에는 Verhofstadt를 수반으로 하고, 사회당과 녹색당을 파트너로 하는 연정을 구성하게 된다. VLD는 사회당과 녹색당 함께 연정을 구성하면서,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입장을 많이 완하하게 된다. 이런한 변화에 반발해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Dedecker가 탈당해 독자적인 당을 만들어 2004년 지방선거와 2007년 연방선거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한 분열과 정책적 온건화는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벨기에 정당들이 늘 그러하듯이 VLD도 위기를 겪으면서 2004년 open VLD로 당명을 변경한다. 불어권 자유당도 지역주의적 성향을 강화하고, 1995년 PRL는 FDF와 선거 연합을 구성한다. 2003년부터 PRL-FDF는 기민주의 운동세력 일부와 연합해 MR을 만들어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자유당은 2009년부터 사회당을 파트너로 삼아 정부를 이끌고 있다.

4. 지역정당

벨기에 정당체제에서 전통적 정당을 위협한 정당은 지역주의 정당 정도다. 지역주의 정당의 성장과 영향력 확대로 인해 현재의 연방주의 체제가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정당의 절정기는 연방체제를 관철시킨 1970년대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전통적 정당들 전부가 지역별 분리를 통해 지역정당화하면서 지역주의 정당들은 위기를 맞았고, 최근들어 VB같은 극우정당이 ‘분리독립’ 주장을 하는 등 지역주의 색채를 강화하면서 또 다른 위기를 맞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리독립’같은 급진적 주장을 하면서 2010년 선거에서 최고 득표정당까지 되었다. 이런 지역주의 정당을 플랑드르과 브뤼셀, 왈롱 지역으로 나눠서 살펴보자.

4.1. 플랑드르

플랑드르 지역정당 Volksunie는 1954년 창당했다. 플랑드르 지역주의 운동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생겨나기 시작해 간간히 몇몇 의석을 얻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네덜란드어를 ‘교육용 언어’와 ‘공식 언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었다. 1919년 투표권이 확대되면서 네덜란드어 사용자가 공직에 많이 진출하면서, 기존 정당에도 지역주의적 요구가 영향을 미쳤다. Volkunie는 나치 점령기에 나치에 협력하면서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나치 협력자로 많은 지역주의 정치가들이 처벌을 받았으며, 나치협력자라는 낙인 때문에 플랑드르 지역주의 정당은 재기하는데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하지만 1954년 Volksunie가 창당하고, 1965년 선거에서는 플랑드르지역에서 12%까지 득표하기에 이른다. 1971년과 1974년 선거에서는 더 큰 성공을 거두어, 벨기에 국가개혁에 관한 협상에 참여했으며, 정부구성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Volksunie 당내에서 연정참여는 참여를 두고 많은 논쟁이 이어졌다. 일부는 정권에 참여해 부분적 개혁이라도 이루자는 주장을 폈고, 급진파는 플랑드르의 더 많은 자율성과 나아가 브뤼셀의 플랑드르 도시로의 편입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1977-8년 사이에 있었던 브뤼셀의 지위에 관한 타협으로 VU는 많은 의석을 잃었고, 새로운 지역주의 정당(또는 극우 지역주의 정당) Vlaams Blok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 외에 VU는 전통적 정당들이 지역별로 분리하고, 연방제가 도입되면서 VU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VU의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2001년 당의 미래를 두고 총 투표가 실시되었으며, 당의 급진파가 당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2003년에 N-VA를 만들었으나 1석 밖에 확보하지 못하게 됐고, 결국 이후의 선거에서는 CD&A와 연합해서  ‘플랑드르카르텔’이라 불린 공동명부를 통해 의회에 진출했다. 2010년 선거에서는 선거연합을 파기하고 ‘플랑드르 공화국’이라는 플랑드르분리독립 공약으로 17.4%를 득표해 벨기에 1당이 되었다. VU의 진보적 분파는 SPIRIT을 결성해 플랑드르 사민당, SP.a와 연합해 선거를 치르기도 했다. 2008년 VL.pro로 당명을 변경했다가 다시 SLP로 변경했으나 당원의 대부분이 SP.a에 흡수된 상태다.

4.2. 왈롱

왈롱지역의 지역당은 1965년 RW라는 이름으로 생겨났다. 왈롱지역에는 지역주의 운동이라는 것이 없었으나 경제적 중심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왈롱지역이 경제적으로 쇄락하면서 지역주의 운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플랑드리 지역의 지역주의 운동과 달리 왈롱지역의 지역주의 운동은 대중적 기반이 존재하지 않았아다. Perin이라는 당수가 등장하면서 실용적 정책으로 정권에 참여할 수 있게까지 되었으나, 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등의 수용으로 당은 내부적 갈등을 겪게된다. 이 과정에 당수인 Perin은 PRL과 통합한 자유주의 지역당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RW는 쇄락해 갔다. PS가 왈롱 지역당이 되면서, 왈롱지역의 이익을 대변하기 시작한 것도 RW 쇄락의 한 원인이다. 또 왈롱 지역주의는 왈롱 노동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왈롱 지역주의는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4.3. 브뤼셀

브뤼셀의 지역당은 자유당에서 언급한 FDF이다. 6-70년대 플랑드르 지역운동의 성장하면서 브뤼셀을 플랑드르지역으로 편입시키자는 주장이 제기되자 브뤼셀의 불어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생겨났다. FDF는 브뤼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1993년부터 PRL과 연합해서 MR이라는 공동명부로 선거에 임하고 있다.

지역당은 70년대 절정에 달했다가 지역적 자율성이 증가되고, 전통적 정당이 지역당으로 나눠지면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 플랑드르지방의 지역당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극우 지역정당인 Vlaams Belang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5. 극우정당

1978년 벨기에 정당체제가 언어권별로 분리되면서 양측 독자적으로 정당체제가 발전시켰다. 독자적 발전중의 하나가 플랑드르지역의 Vlaams Blok이다. VB는 Volksunie의 분파가 1977년 창당한 정당이다. VB는 1980년대에는 1-3% 정도의 득표에 머물렀으나,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FN과 당수 프팬을 밴취마킹해서 ‘반이민자 정책’과 ‘분리주의 정책’을 주장하면서 급성장했다. 이들의 시작은 안트베르펀 시의회 선거였다. VB는 안트베르펀 정치를 1918년부터 장악하고 있던 기민-사회당 연정을 효과적으로 비판하면서 18%의 득표를 기록했다. 198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플랑드르의 6.5%를 득표했고, 이어진 1991년 총선에서 플랑드르 지역 득표의 10% 이상을 차지하면서 벨기에 정치계에 큰 충격을 줬다. VB의 인종주의적주장과 파시스트 분파와 인적 연관 등으로 벨기에의 여타 모든 정당이 VB와의 연정을 거부하는 격리협약(corden sanitaire) 형성되었다.

VB는 2004년 선거에서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지속적으로 연정에 배제되는 상황에 대해 당내에서 논쟁이 일기 시작했다. 국고지원을 받기위해 당명도 Vlaams Belang으로 변경한다. N-VA나 Lijst Dedecker같은 당과 연합할 수 있도록 온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역주의 색채를 강화해서 ‘플랑드르 독립’ 주장을 펼치고 있다. 2010년 선거에서는 7.76% 득표로 2007년 선거에 비해 4.23%로 득표가 감소했다. 왈롱지역의 극우정당으로 FN이 있기는 하지만, VB에 비해 선거에서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고, 내부적으로 갈등을 많이 겪고 있다.

6. 녹색당

벨기에에서도 서구의 다른 나라들 처럼, 탈산업사회화 되면서 녹색당이 등장했다. 벨기에에는녹색당도 다른 정당처럼 지역별로 존재한다. 불어권의 Ecolo가 플랑드르의 Groen!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녹색당은 197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왈룬지역에서 5%이상 득표하면서 벨기에 정치에 등장했다. 다른 녹색당과 마찬가지로 젊고, 교육을 많이 받은 탈물질주의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꾸준히 성장했다. 1991년 선거에서 유럽내에서 가장 강력한 녹색당이 되었고(왈롱지역 득표기준), 지금도 가장 강력한 녹색당 중에 하나다. 플랑드르에서 VB가 전통적 정당의 지지자들을 흡수했듯이 왈롱에서는 Ecolo가 전통적 정당 지지자들을 흡수했다. 1999년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는 선거 몇 주 전에 소와 닭의 먹이에 다이옥신이 들어간 사실이 밝혀 지면서 이변이 시작됐다. 이 스켄들로 인해 환경이슈가 주목을 끌면서, 두 녹색당이 벨기에 전체의 14%의 지지를 획득했고, Ecolo는 왈롱에서 18%를 득표했다. 녹색당은 1999-2003년에 사이의 기간동안 연정에 참여하면서 당내적으로 많은 갈등이 표출됐다. 당내 투쟁으로 당대표가 2번이나 바뀌는 등 연정참여 문제로 내분이 당내 갈등이 커졌다. 그 결과 2003년 선거에서 지지율의 급감을 겪었다. 녹색당은 연방수준에서 연정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역수준에서는 유력한 연정파트너의 역할을 하고 있다.

플랑드르 녹색당도 1979년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해서 2.3%를 득표했으나 Ecolo보다는 저조한 성적이었다. 당시 당명은 ‘다르게 살기’라는 뜻의 Agalev였다. 유럽연합 선거이후 점진적으로 플랑드르 정당체제에 등장했으나, 소규모 정당을 벗어나지 못했다. 1999년 다이옥신 위기로 급격히 성장하기는 했지만 연정 참여이후 2003년 선거에서, 득표감소와 5% 봉쇄조항도입으로 의석을 하나도 얻지 못 했다. 2007, 2010년 선거에서 당명을 바꿔 어느 정도 지지율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으나, 여전히 야당의 지위에 머물러 있다.

7. 정당간 정책경쟁과 연정

벨기에 정당의 정책적 경쟁은 경제적 이슈와 사회적 이슈, 분권화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Benoit(2006)의 정당의 정책적 위치에 관한 전문가 평가 자료에 따르면 벨기에 정당은 아래 그림과 같이 자리 매김하고 있다. 경제적 이슈에 있어서 녹색당과 사회당이 정부지출(Spending)을 강조하고, 자유당과 극우정당이 세금을 줄이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역당과민당은 중간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녹색당과 사회당이 대체로 리버럴한 입장을 취하는 반면, 극우정당(VB, FN)이 보수적인 입장을 견한다. 자유당은 녹색당이나 사회당과 가까운 편이고, 기민당은 약간 보수적인 편이다.

지역 분권화를 둘러싼 입장을 살펴보면, 예상대로 플랑드르 지역당과 극우정당이 지역분권화를강력히 추구하고 있다. 지역 분권화 이슈는 정당계열보다는 지역적 배경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왈롱 정당 전체가 플랑드르 정당 전체보다 분권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플랑드르 지역내에서는 극우정당과 지역당이 가장 분권화 지향적인 반면, 녹색당과 사회당은 덜 분권화를 추구한다. 자유당과 기민당은 중간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 벨기에 정당의 정책적 경쟁-전문가 조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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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Benoit, Kenneth und Michael Laver (2006)

벨기에의 연정구성 형태는 최소승리연정(mininal winning coalition)이 주를 이루며,  가끔식 대연정(grand coalition)이나 초과 연정(surplus coalition)이 만들어지기도 한다(Kropp 2008:526). 정책적 유사성을 추구하는 최소범위연정(minimal range coalition) 적용되지 않고 있다. 현정부인 레테름 2기 내각의 경우 양 언어권의 기민당과 자유당, 불어권의 사회당이 참여하고 있다. 이전의 Verhofstadt내각은 자유당 주도하에 사회당과 녹색당으로 구성하거나, 자유당, 사회당만으로 구성한 경우도 있었다. 그 이전의 Dehaene 정부에서는 기민당과 사회당이 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현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open VLD와 PS의 경우를 살펴보면, 위에 살펴본 경제, 사회, 분권화 어느 정책을 대입해도 상당한 차이가 남에도 같이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정당계열에 속하는 PS는 연정에 참여했지만 SP.a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벨기에 연정은 정책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하는 최소범위 연정이 아니라, Office-seeking 우선의 최소승리 연정적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극우정당인 VB의 정부 참여를 거부하는 ‘격리협약(corden sanitaire)’은 암묵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8. 정당의 구조

벨기에 정당들 조직적 구조는 대체로 비슷하다. 중앙당과 기초 조직인 시군구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2, 중앙당과 당대표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한편이다.

플랑드르 정당의 경우 연방선거구와 주선거구가 일치하기 때문에 연방-주-지역으로 비교적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반면 왈롱지역의 경우, 브뤼셀이 있고, 연방 선거구와 주 선거구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3 좀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당대회는 당 최고 의결 기구로 지역을 대표해 대의원들이 모여서 의사를 경정했으나, 최근 들어 대부분의 정당들이 당원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또 당대회의 주요 기능중에 하나가 당대표 선출이었으나, 1990년대 들어 대부분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1969년 PSC(현 CDh)가 당원 직선으로 선출하기 시작하고, 브뤼셀 지역 자유주의 정당인 FDF가 이를 따르면서 따르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당대표 선거는 2004년 Open VLD의 당대표 선거처럼 실질적으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4 일반적인 경우 당지도부가 정한 후보를 추인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벨기에 정당의 당원수도 다른 서구 국가들 처럼 전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1980년대 초 절정을 이뤘다가 1980년대 중반이후부터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전의 증가세는 인구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유권자대비 당원수로 봤을 때는 약간의 증가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80년대 이후 당원 감소세는 유권자 대비 당원수로 봤을 때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주요 대정정당의 당원수를 보면 80년대 이후 기민당과 사회당의 감소세가 뚜렸하다.지만 자유당의 경우 80년대 말부터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Deschouwer 2009:100-1). 다만 기민당과 사회당의 당원 감소세는 각 정당의 지지율 감소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9. 정당의 재정

벨기에 정당은 현재 당 재정의 75%를 국가 재정에 의존하고 있다. 1970년대 부터 국가재정으로 정당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970년 상원 원내교섭단체에 대한 지원이 시작됐고, 이어 1971년 하원 원내교섭단체에 대한 지원도 시작됐다. 현재 상원의원 1인당 7만유로와 하원의원 1인당 45천유로를 해당 교섭단체에 지급하고 있다. 1989년까지는 당연구소와 방송국을 제외하고는 교섭단체에 대한 지원이 국가 재정을 통한 정당에 대한 유일한 지원이었다.

1989년 Dhoore 법이 재정되면서 다음의 4가지 원칙이 확립되었다.

  • 국가가 원내교섭단체를 거치지 않고, 정당에 직접 지원: 상하원 어디든 의석을 가진 정당은 13만유로를 우선 지급하고, 총선 득표당 1.3유로 추가지급
  • 정당이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철폐: 개인이 연간 2000유로까지 정당에 기부할 수 있다.
  • 고비용 선거운동 제한: 당별로 선거운동 비용의 한계가 정해지고, 선거운동전문가 집단을 고용하는 것등이 금지됨. 후보개인도 비용이 제한되고, 당선된 후보와 정당은 선거운동 비용과 조직화에 대해 의회에 보고해야 함.
  • 정당은 국가로 부터 받은 재정의 당 회계를 출판해서 공개해야 한다.

연방의회 마찬가지로 지방의회도 교섭단체에 재정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995년 지역의회가 도입되고, 국가의 직접 지원과 연방의회와 지역의회, 언어공동체 의회 교섭단체에 대한 간접 지원이 늘어나 연 4천만유로 정도, 즉 유권자당 6유로 정도로 늘어 났다. 1996년 왈롱 지역의회에서 당에 대해 직접 지원하기 시작했고, 2001년 플랑드르 지역의회도 그 뒤를 이어 당에 직접지원하면서, 이 지원금만 별도로 1천만유로에 이른다.

Dhoore 법은 극우정당에 국가재정이 흘러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세계 인권선언’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 당헌당규에 명시하고 있는 정당에만 재정지원을 하도록 해, VB에 대한 지원을 막아 왔다. 하지만 2004년 VB가 관련내용을 당 공식문서에 삽입하면서 이 조항은 무력화 됐다.

10.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벨기에 정당은 국가재정지원을 바탕으로 정당국가의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또한 정당 명칭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인 정당인 기민당과 사회당, 자유당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정당간의 경쟁은 경제와 사회적 이슈뿐만 아니라 분권화 이슈를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나, 연정구성은 정책보다 Office-seeking이 우선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당내에서 당원의 감소와 국가지원 재정의 증가, 당대표 직선제등을 통해 지도부의 권한이 강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Benoit, Kenneth und Michael Laver (2006): Party policy in modern democracies. London u.a.: Routledge.
  • Deschouwer, Kris (2009): The Politics of Belgium: Governing a Divided Society. Palgrave Macmillan.
  • Kropp, Sabine (2008): Koalitionsregierungen. In: Gabriel, Oscar W. und Sabine Kropp (Hrsg.): Die EU-Staaten im Vergleich Strukturen, Prozesse, Politikinhalte. Wiesbaden: VS Verl. für Sozialwiss.: 514-549.

Notes:

  1. 사자는 네델란드 어권의 상징이고 청색은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블루 라이온은 네덜란드어권 자유주의자를 의미한다
  2. 경우에 따라서는 1976년 행정구역 개편이전의 지역별 조직이 있는 경우도 있다.
  3. 주의회의 2/5는 좀 더 세분화된 선거구를 통해 선출한다.
  4. 당시 당대표에 유도 코치 출신의 Dedecker가 도전해 38%나 득표한 바 있고, 이후에 당내 비판 세력으로 남았다가, 2006년 출당 조치당해, 본인 이름을 딴 정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2007년 선거에서는 4.3%라는 높은 득표율을 보이기도 했다.